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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김장하 선생 종교 장학생 한의원 장학금 책 나이 고향 프로필

78734 2025. 4. 7. 19:47

김장하(金章河)
출생
1944년(80 ~ 81세),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경력
남성당한약방 대표, 학교법인 남성학숙 이사장, 남성문화재단 이사장, 진주신문 이사장, 진주환경운동연합 고문

문형배 안부인사에, 김장하 선생 "단디해라 했다"
-2025. 4. 6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창원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긴장 속에 차량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속에서는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이 12·3 불법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의 헌법 위반 사실을 열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문 대행이 한 마디 할 때마다 시민들 속에서, 특히 젊은 청년들 사이에서 '맞어! 맞어!'하는 소리가 연달아 나왔다. 넉 달 동안 광장과 거리에서 '윤석열 파면'을 외쳤던 시민들은 문 헌법재판관이 읽어내려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 내용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오전 11시 22분. 문 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고 하자 시민들은 벌떡 일어나 부둥켜 안거나 소리를 지르며 "국민이 이겼다"라고 외쳤다. 눈물을 흘리는 청년들도 많았다.

흥분 속에 기쁨을 만끽하던 무리 속에서 몇몇 사람들이 말했다. 김영만(82)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김장하 이사장께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거 같다"라고 했다.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을 지낸 고승하(77) 작곡가는 "진주 김장하 선생께 전해달라. '똘똘한 문형배 헌법재판관을 키워주어 고맙다'라고 말이다"라고 했다.

 


잠시 뒤 광장을 나오면서 김장하(81)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께 전화를 드렸다.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파면'이라고 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셨는지 물었다. 김영만 고문과 고승하 작곡가가 했던 말을 전하자 김장하 선생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면서 "그랬나"라고만 대답했다. 말씀을 아낀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핵 찬반 갈등 속에 문 대행이 겪었을 고민이나 마음고생을 함께 하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전화통화에서 '단디해라'고 말했던 거 같다"

헌재의 탄핵 선고가 늦어지면서 문 대행과 김장하 선생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더러 "김장하 이사장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냐"고 묻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12·3 불법비상계엄 이후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탄핵 관련해 말을 아꼈다.

강연차 진주를 찾았던 김승환 전 전북도교육감과 3월 20일 같이 했던 식사 자리, 부산 공연 하루 전날인 3월 28일 저녁 진주에 들렀던 이승환 가수와 함께 했을 때도 탄핵 관련 이야기가 나왔지만, 김 이사장은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올해 1월 새해 인사차 만났던 자리에서 여쭈었더니, 김 이사장은 "지난 연말에 문 대행하고 짧게 통화 한 번 했다. 연말에 안부를 전하는 휴대전화 문자가 왔는데 내가 답을 안했더니,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전화를 했더라. 탄핵 관련해 특별히 말은 없었는데 '단디해라'고 말했던 거 같다"라고 말했다.

김장하 선생이 12·3 계엄 이후 진주에서 벌어진 시국대회에 한번 참석했던 적이 있다.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6일 저녁 진주시청 앞에서 윤석열퇴진 진주시민모임이 열었던 '윤석열 체포 진주시국대회'였다.

김 선생은 집회가 시작될 때부터 거리행진이 시작되기 전까지 촛불을 들고 앉아 있었다. 김 선생은 주최측에 소개를 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날 김 선생과 함께 했던 하정우 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집행위원장은 "낮에 점심을 하면서 저녁에 집회가 있다는 말씀을 드렸고, 댁에 모셔다 드렸는데 오후에 전화가 와서 시국대회에 가보자고 하셔서 모시고 갔다"라고 말했다.

그는 "집회 중간에 추우니까 가자고 말씀을 드렸더니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이 정도 추위는 견뎌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라고 전했다.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사회에 갚으라"

4일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고 선고한 뒤, 김장하 선생을 함께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많은 사람들이 관련 글을 올리고 있다.

문 대행이 2019년 4월 국회 청문회 때 했던 말이 이번에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학 다닐 때 김 이사장의 장학금을 받았던 문 대행이 공식적으로 거론하기는 두 번 정도다. 문 대행은 고등학교와 대학 다니는 동안 김장하 이사장의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국회 청문회가 있기 전인 같은 해 1월 16일 경상국립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행사 때였다. 김 이사장의 생일날에, 그의 도움을 받았던 많은 시민들이 "김장하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연 행사였다.

김 이사장과 늘 함께 하며 사회문제 등에 대해 고민해왔던 고 김수업(1939~2018) 경상국립대 교수(한글학자)와 고 박노정(1950~2018) 시인(옛 <진주신문> 대표이사 겸 발생인)이 같은 해 세상을 떠나자, 여태훈 진주문고 대표, 홍창신 전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전민규 큰들문화예술센터 대표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문화단체들이 김 이사장 몰래 행사를 준비했다.

김 이사장께 '좋은 공연이 있다'고 해서 모시고 와서 시민들이 "고맙습니다"라며 인사를 드렸다. 당시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였던 문형배 대행이 그 자리에 함께 해서 울먹이면서 김 이사장의 도움으로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50여년간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다가 2022년 5월 문을 닫았고, 자신의 호를 딴 '남성문화재단'을 통해 교육과 문화예술, 사회, 여성, 인권 등 분야를 지원했다. 그는 1983년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해 이듬해 명신고등학교를 세워 10여 년간 이사장으로 있다가 1991년 국가에 기부채납했고, 1990년 시민주로 창간했던 옛 <진주신문> 주주·이사로 참여했으며 1995년부터 27년간 '진주(신문)가을문예'를 지원했다.

김 이사장은 2021년에 재단을 해산하면서 당시 남은 기금 34억 원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탁했고, 평생 사회에 환원한 기부금이 수백억원에 이른다. 그날 생일 때 있었던 행사에는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마련했던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문 대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경남 하동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독지가인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 4년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한약업사로서 번 돈으로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국가에 기증하셨고, 수백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형평운동기념사업회와 진주오광대 복원사업, 경상(국립)대학교 남명학관 건립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하게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에 있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사회에 갚으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고, 저는 그 말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법관의 길을 걸어온 지난 27년 동안 한결 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 헌법의 숭고한 의지가 우리 사회에서 올바로 관철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것만이 선생의 가르침대로 우리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간직한 저의 초심은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권한대행은 임기 6년을 마치고 오는 18일 퇴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