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앵란 아들 강석현,신성일 부인 아내 딸 강수화 나이 남편 고향

2022. 10. 10. 02:01카테고리 없음

'영원한 스타' 신성일 입관..엄앵란 "인생은 연기야"
- 2018. 11. 5.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은 '영원한 스타' 신성일이 5일 오전 작은 관에 몸을 누이고 안식에 들었답니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입관식이 열렸다.


55년을 함께 한 배우자이자 연기 동지인 엄앵란은 아들 석현 씨와 차녀 수화 씨의 부축을 받으며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입관식을 마친 엄앵란은 "그냥 인생은 연기다. 스님께 법문을 들었는데 그 말이 꼭 맞다. 연기로 왔다가 연기로 떠서 돌아다니다가 나하고도 다시 연기로 만날 것"이라며 "그래서 둘이서 좋은 데 다 보고 말하고 그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은 숨이 끊어지면 목석과 같다. 잘났다고 하지만 눈 딱 감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여기서는 인연을 맺어서 내 새끼, 내 식구 야단법석을 치지만 저세상에서는 내 식구 찾는 법이 없다. 다 똑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걱정이 너무 많다. 그게 욕심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욕심의 노예가 돼서 사는 것 같다"며 "오늘부터 욕심 없이 살겠다"고 덧붙였다.

입관식은 고인이 독실한 불교 신자인 까닭에 불교식으로 치러졌으며, 유족과 고인의 조카인 강석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비롯한 친척들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가량 진행됐답니다.

전날 최불암·신영균·이순재·안성기·문희·이창동·조인성 등 영화계 인사와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 등이 빈소를 방문한 데 이어 이날 오전에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국내 최고령 현역 방송인인 송해(91)는 오전 10시 20분께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답니다.


송해는 고인에게 "우리나라서 영화 하면 제약도 많고 삭제도 많이 당하고, 검열도 많이 하는데 거기선 그런 거 없다. 뜻대로 제작해서 우리 세상에 많이 보내달라"며 "거기서도 영화로 오가고 활동 많이 하기 바란다"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고인과 다수의 영화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창숙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스타로서 잘 사신 분"이라고 회고했습니다.

김창숙은 "처음 같이 작품에 출연할 때 참 영광스럽게 생각했다"며 "그분과 같이 영화를 했다는 것에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저렇게 오랫동안 스타성이 있었던 분은 없었다"며 "후배들을 굉장히 잘 챙겨줬고 특히, 러브신이 있으면 부끄러워하는 여배우를 굉장히 잘 감싸주시고 배려를 많이 해줬다"고 덧붙였습니다.

- 엄앵란 프로필 이력 경력

본명 이름은?
엄인기
출생 나이 생일
1936년 3월 20일 (86세)

고향 출생지
경기도 경성부 죽첨정

학력
서울미동국민학교 (졸업 / 41회)
중앙여자중학교 (졸업)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가정학 / 학사)

가족관계
아버지 엄재근, 어머니 노재신의 장녀
배우자 신성일(1964년 결혼~2018년 사별)
장녀 강경아(1965년생)
장남 강석현(1967년생)
차녀 강수화(1970년생)

데뷔년도
1956년 ' 단종애사'
종교
불교

- 강신성일 프로필은??

본명
강신영(姜信永) → 강신성일(姜申星一)
출생 나이 생일
1937년 5월 8일

고향 출생지
경상북도 대구부
사망일
2018년 11월 4일 (향년 81세)

신체 키 몸무게 혈액형
174cm, 68kg, 270mm, A형
직업
배우, 정치인

학력
대구수창초등학교 (졸업)
경북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 40회)[8]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수료)

- 이들 부부의 자녀와 과거 보도 살펴본기

배우 신성일 별세, 엄앵란-강석현-강석화 유족들에 이어진 관심이어져
- 2018. 11. 4.

‘한국 영화의 큰 별’ 배우 신성일이 별세하면서 그의 아내인 엄앵란과 아들 강석현, 강석화에게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강석현은 영화배우 겸 연출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6년 영화배우로 데뷔했고, 1990년 제14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연기대상을 받기도 했다. 배우로 활동할 당시 강석현은 아버지 신성일과 닮은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답니다.

영화 ‘돈황제’, ‘안개 속에서 2분 더’ 등과 드라마 ‘오남매’ 등에도 출연했던 그는 2002년 이후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2009년 ‘돌아온 일지매’ 등을 제작하는 드라마·영화 제작자로 거듭났다.

엄앵란은 과거 방송에서 MC가 막내딸 강수화의 미모와 언변을 칭찬하며 “연예계 쪽으로 더 밀어주셨으면 좋았겠다”고 하자 “한집에서 둘을 밀어주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아들을 미는 바람에 얘가 빛을 못 봤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은 바 있다니다.

한편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전남의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오늘(4일) 새벽 2시 25분 향년 81살로 별세했다.

'신성일-엄앵란 아들' 강석현, 10월 결혼
- 2013. 9. 30

원로배우 신성일과 엄앵란 부부의 아들 강석현(46)이 10월 서울 모처에서 결혼한다.

강석현은 지난 26일 언론과의의 인터뷰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예식을 올리게 됐다. 늦은 나이에 결혼식을 올리는 만큼 조심스럽다"라며 "대단히 감사하다. 예쁘게 잘 살겠다"라고 말했답니다.


이어 강석현은 "웨딩 촬영에 아버지(신성일)와 함께 했다. 아버지 역시 아들을 장가보내게 돼 무척 기뻐하신다"라고 설명했다.

강석현은 젊은 시절에는 배우로, 이후에는 드라마 제작자로 활동했다. 강석현의 예비 신부는 일반인으로, 결혼식은 가족들끼리만 조촐하게 치를 예정이랍니다.

엄앵란 딸 강수화 "방송인으로서 펼치고픈 꿈 있어"
- 2014. 9. 18

배우 엄앵란의 딸 강수화 씨가 방송인으로서의 꿈을 밝혔다.

강수화는 18일 방송한 SBS '좋은 아침'에 출연, 어머니 엄앵란과 아이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 전파를 탔답니다.

이날 '스타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방송에서는 유명인의 자녀로 살아온 강 씨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앞서 강 씨는 어릴적 배우의 꿈을 가졌던 강 씨는 아버지 신성일의 반대로 꿈을 버려야했던 사연을 들려준 바 있다.

이에 강 씨의 자녀들은 "딸은 사람이 꿈을 갖고 살아야 하는데 엄마는 그걸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꿈을 따라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고 생각한답니다.

강 씨는 "지금은 엄마 매니저 일을 도와드리고 애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그 정도만 해도 좋을 것 같다"며 "방송일이 체질에 맞고 좋은데 어떤 일이 주어져도 잘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고 전했다. 10여년 전 남편과 이혼한 강 씨는 "요즘의 바람은 (아이들과 함께) 셋 다 연애를 제대로 해 보는 거다"라며 "각자 멋있는 연애를 하되 할머니 앞에서는 안하는 척 해야할 것 같다"며 웃음지었다.

고(故) 신성일은 누구? 연기부터 국회 입성까지..'이 모든 게 한국영화를 위해서였다' 
조성준입력 2018. 11. 3

폐암으로 4일 새벽 타계한 고(故) 신성일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영화계 최고의 스타였다. 530여편의 출연작 가운데 주연작만 무려 506편에 이르는 ‘톱(Top) 오브 톱’이었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로 일컬어졌던 1960년대를 지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고인은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데 눈을 돌렸다.

반공을 국시로 앞세운 ‘의무제작’ 제도 도입과 외화 수입쿼터제 시행 등 독재정권의 잘못된 정책과 검열 강화로 이른바 ‘호스티스물’ 범람 등 쇠퇴기를 겪게 된 한국 영화계의 재도약을 위해 1977년 고향 대구로 내려가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0·26 사태로 사망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오면서 출마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뒤, 1981년 제2야당이었던 국민당 소속으로 마포·용산 지역구에 나섰지만 낙선했답니다.

훗날 고인의 회고에 따르면 유권자 대부분이 신성일은 알지만 본명 강신영은 몰라 벌어진 결과로, 선거 패배로 거액의 빚까지 지게 된 뒤 대구로 낙향해 아내 엄앵란의 식당 경영을 도우면서 한동안 칩거 생활을 했다.

앞서 1960년대 후반에는 필름 공장 건립을 추진하다 사기를 당해,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이었던 1억원을 날리는 등 불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이 모든 도전들이 한국영화를 위해서였다. 국회의원은 영화법을 개정해 영화계를 살리고 싶어 도전했고, 필름 공장은 싼 값으로 필름을 공급하기 위해 건립을 추진했다”며 “대부분 실패했지만 영화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꿈꿨다는 점에서 부끄럽지 않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도전과 필름 공장 건립 등 야심차게 도전했던 일들이 모두 무위에 그친 뒤 제작자로 변신해 1989년 성일씨네마트를 설립한 뒤, 이듬해 1호 작품으로 선보인 ‘코리안 커넥션’을 포함해 총 6편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로써 연기와 연출, 제작을 모두 경험해 본 영화인으로 우뚝 서게 됐답니다.

이처럼 다방면의 활동을 펼치는 와중에도 국회 입성의 꿈을 버리지 못한 고인은 예명에 본명을 더한 강신성일로 개명후 또 한 번의 낙선을 경험한 뒤 2000년 제16대 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대구 동구에 나가 2전3기의 기쁨을 맛봤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2005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 연장과 관련해 옥외 광고물 업체로부터 1억87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의정부 교도소에서 2년여간 수감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2년여의 수감 생활을 마친 고인은 경북 영천의 자택과 서울을 오가며 2010년 MBC 드라마 ‘나는 별일없이 산다’와 2013년 영화 ‘야관문 : 욕망의 꽃’의 주연을 맡아 연기 생활을 이어갔지만, 연기보다는 말년의 숙원 사업으로 삼았던 영화박물관 건립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러나 영화박물관 건립은 페암이란 암초를 만나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얼마전에는 건강이 많이 좋아져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고,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 등 몇몇 TV 프로그램으로 팬들과 만나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엄앵란과 장남 석현 씨, 장녀 경아 씨와 차녀 수화 씨가 있다. 석현 씨는 1989년 영화 ‘비 오는 날 수채화’에서 아버지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등 한때 영화배우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드라마 제작자로 활동중이랍니다.

신성일 "김영애 엄앵란도 모르는 내 아이 임신했었다"
- 2011. 12. 5

영화배우 신성일이 연극배우와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故 김영애(1944~1985) 씨와의 가슴 아팠던 사랑 얘기를 처음 공개했답니다.

신성일은 5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아내 엄앵란과 결혼 후 나눴던 애절한 사랑 얘기를 이 책에 담았다"며 "이 부분은 책에 담긴 걸 대변할 수 있다"고 밝혔답니다.

이 자서전은 지난 몇 개월간 한 일간지에 연재한 이야기를 묶었지만, 김영애 씨와 관련된 얘기는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1973년도 얘기다"라고 말을 꺼내 신성일씨는 "자기 아내(엄앵란)가 있으면서 어느 여인을 사랑했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겠죠. 하지만 이 여인은 죽었다. 교통사고로…. 그러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죠"라며 "눈뜨고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면 남자로서 비겁한 거죠. 나는 비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김영애는) 1985년도에 고인이 됐으니 20년도 넘었다"라고 故 김영애씨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풀어헤쳤답니다.

그는 지난 1970년 국내에서 처음 만난 뒤 김영애 씨가 거주하던 미국과 그가 해외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외국에서 주로 만났다고 고백했다.

신성일은 김영애 씨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한 사연도 털어놨다. 그는 "국제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 얘기(아이를 가졌다는)를 들었는데, 통신 상태가 안 좋아서 큰 소리로 말해야 서로 알아듣는 시절이었다"며 "집안 식구를 피해서 친구 사무실에서 통화했는데, 뭐라 말을 못 했어요. 떼라, 낳아라 고함을 질러야 하는데 그 말을 못했다"며 당시 심정을 세밀하게 표사했다. 이어 "나는 멍청한 상황에 있다가…그쪽에서 '그럼 알아서 할게요' 하고 끊었는데, 그 뒤로 1년 동안 소식이 두절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이 얘기를 자서전에 처음 공개한 이유에 대해 "요즘 정치판이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굉장히 살벌한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상대에 대한 배려나 여유를 가질 수 없다"며 "사랑 얘기를 하고 싶었고 이 얘기가 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관련 가족들의 반응을 묻자 신성일은 "책의 맨 뒤를 보면 엄앵란이 쓴 글이 있다"며 "엄애란이 본 신성일은 사랑하는 부부 이전에 삶의 동지"라고 말했다.


특히 신성일은 "나는 마누라도 사랑했고 김영애도 사랑했다"며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지금도 애인이 있다. 마누라에 대한 사랑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자신만의 사랑관을 밝혔답니다.

한편 '청춘은 맨발이다'는 영원한 자유인이자 지치지 않는 젊은 심장을 지닌 로맨티스트 신성일의 인생 이야기이자 한국의 문화예술 연대기를 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