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 김옥숙 나이 고향 대통령 노태우 부인 아내

2020. 7. 8. 23:25카테고리 없음

 망월동 구 묘역에 안장된 이한열 열사의 묘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조화가 놓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는 2020년 5월 29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와 망월동 구 묘역을 잇따라 찾아 오월 영령에 참배했답니다.

 

재헌씨는 5·18민주묘지에 노태우 대통령의 이름의 대형 조화를 헌화했고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이한열 열사 묘에는 김옥숙 여사의 꽃바구니 화환을 올렸답니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거동이 불편해 아들 재헌씨가 이날 오월 영령에 대신 조화를 헌화한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김옥숙 여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이한열 열사의 묘에 헌화한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김 여사의 화환에는 '이한열 열사의 영령에 추모합니다. 제 13대 대통령 부인 김옥숙'이라고 적혔단비다. 노씨 측은 32년 전 직접 조화를 들고 찾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 열사에게 전하기 위해 1988년 당시 김 여사가 헌화한 것과 최대한 비슷한 모양의 조화를 제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노 대통령 취임(1988년 2월25일) 직후인 2월27일 광주를 찾아 이한열 열사 묘역에 참배했답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노재헌씨가 광주를 찾아 오월 영령에 사죄하면서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답니다.

당시 노재헌씨의 참배는 5·18 학살 주범의 직계 가족으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답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앞선 88년에 김옥숙 여사가 최초로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이랍니다. 이날 이한열 열사의 묘역을 찾은 노재헌씨는 "6·29민주화선언을 이끌어낸 장본인이시네요. 저보다 한 살 어리시고. 참 잘생기셨네요. 당시에 어머니께서도 조화를 들고 가장 먼저 찾아오셨는데"라며 이 열사의 비석을 어루만졌답니다.

이한열 열사는 87년 6월 항쟁 당시 가두투쟁을 진행하다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답니다. 그는 항쟁기간 내내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 그해 7월5일 21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답니다. 당시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동료의 품에서 쓰러져있는 이 열사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답니다.

 

이 열사의 사진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높였고 회사원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한 계기가 됐답니다.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 사건을 계기로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6·29민주화선언을 발표했답니다.

 

6·29 특별 선언은 신군부의 장기 집권에 분노한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자'는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실질적인 군부독재정권의 항복 선언과도 같았답니다. 6·29선언에는 야당의 정치 지도자인 김대중의 활동 제한 조치 해제와 아울러서, 민주화 요구하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석방, 언론 자유의 보장, 사회 각 부분 자유와 자치 보장, 대학의 자율화와 자유로운 정당 활동 보장 등이 담겼답니다.

 

노씨는 이날 김의기, 김태훈, 윤한봉 열사의 묘를 참배한 후 망월동 구묘역에서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인 언론인 힌츠펜터 기념정원과 아울러서, 이한열, 이재호, 백남기 열사의 묘를 잇따라 참배한 후 묘역을 나섰답니다.